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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녀의 영국 귀양살이 seasno 1 (2010-2014)/영국 명절과 기념일

10년의 공백, 다시 찾은 영국 연말 루틴

by 영국품절녀 2025. 12. 4.

저는 영국에서 돌아와 지금까지 시청한 드라마 편 수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보지 못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한국이 아닌 영국에 살았을 때 우리의 드라마는 물론이고 영국 드라마까지 밤새도록 몰아봤던 열정적인 시절이 있었죠.

그 모든 영상 콘텐츠를 제쳐두고, 제가 매년 기다렸던 유일한 연말 루틴이 있다면 바로 "영국 프랜차이즈 크리스마스 광고" 였습니다. 영국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외로운 마음을 녹여주던 그 광고들...

귀국 후 잊고 살았는데,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고 12월이 되자마자 문득 떠올랐어요.

어젯밤, 결국 저는 '2025 Christmas adverts UK' 를 검색해서 밤늦도록 정주행하고 말았습니다.

존루이스를 넘어, 올해의 심장 저격수 '웨이트로즈'

영국 생활을 경험해 본 분이라면 익숙할 이름들이죠. 존 루이스(John Lewis)부터 부츠(Boots), 막스앤스펜서(M&S)까지. 매년 이 브랜드들이 풀어내는 짧은 영화 같은 이야기는, 단순히 상품을 파는 광고를 넘어 영국 연말 문화의 핵심이 됩니다. 

저는 늘 존 루이스의 서정적인 감성을 최고로 꼽았지만, 올해(2025년)는 단연 웨이트로즈(Waitrose)의 광고가 제 취향을 완벽히 저격하고 말았지요. 제가 참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영국의 국민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와 코미디언 조 윌킨슨(필 역) 의 유쾌하면서도 마음이 몽실몽실해지는 크리스마스 연애 이야기입니다.

▶️ 웨이트로즈 2025 크리스마스 광고 'The Perfect Gift' 보기: https://youtu.be/pj7fSm4LfDI

출처: youtube
로코의 시작은 ‘서섹스 차머’ 치즈 코너에서

실연을 당한 필이 친구들과 펍에서 "내 미래의 유일한 상대는 키이라 나이틀리뿐"이라고 푸념하는 장면은 영락없는 영국식 유머입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는 실제로 웨이트로즈 치즈 코너에서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주치죠. 둘은 똑같이 '서섹스 차머(Sussex Charmer)' 라는 프리미엄 치즈를 달라고 말하며 운명적으로 엮입니다.

출처: Google Image

 

('서섹스 차머'는 웨스트 서섹스 지역의 인기 치즈로, 파스타나 샌드위치에 두루 쓰인다고 하니, 영국 현지 마트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셈이죠. 저도 영국에서 수많은 치즈를 먹어봤는데... 이걸 먹어봤는지 가물가물하네요.)

출처: waitrose

 

역시나 영국인답게 필은 상대에게 데이트 신청조차 조심스럽습니다.

"It's Christmas, I was wondering if you'd consider...." (크리스마스잖아요. 혹시... 고려해 보실 의향이 있나 해서요...)

'테토녀(Tear-off-your-clothes, 직설적인 여자)' 기질의 키이라 나이틀리는 이 말을 바로 알아듣고 "I'd love to!" 라며 쿨하게 데이트 약속을 잡습니다. 이 조심스러움과 쿨함의 대비가 영국 로코의 매력 아닐까요?

"누군가를 위한 요리는, 사랑이다"

물론 남녀 사이에는 오해가 있어야 드라마죠! 필이 아닌 '마크'에게서 온 선물을 보고 오해하는 바람에 둘 사이는 잠시 냉랭해지지만, 마크가 키이라의 '오빠'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갈등은 해소됩니다.

이 모든 소동 속에서 제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것은, 필의 엄마가 아들에게 해 준 따뜻한 한 마디였어요.

"Cooking for someone is love." (누군가를 위한 요리는, 사랑이란다.)


출처: Youtube Capture

 

우리는 바쁜 일상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정성을 쏟는 일을 종종 잊고 살죠. 완벽하고 화려한 식사가 아니라, 서툴러도 좋으니 "상대방을 생각하며 만든 그 정성 자체가 사랑이라는 메시지" 가 제 가슴에 깊게 와닿았습니다.

필은 이 말을 듣고 정성껏 만든 크리스마스 파이에 'I Love You' 라는 문구를 새겨 선물합니다. 이 파이를 그녀에게 전해주는 과정에서도 잠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만,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죠.

광고가 선물하는 것: 그리움과 소망

광고가 끝난 후, 웨이트로즈 웹사이트와 각종 SNS(틱톡, 인스타그램)에는 영국 사람들이 직접 만든 'I Love You 파이' 인증샷이 보입니다. 저도 터키 파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광고를 보고 나니 왠지 정성 가득한 필의 파이 맛이 무척 궁금해집니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잘 만든 광고는, 그 상품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최고의 도구임이 분명합니다.

웨이트로즈의 이 '완벽한 선물(The Perfect Gift)' 광고와, 배경음악으로 쓰인 락밴드 제임스(James)의 명곡 'She's a Star (1997)'를 들으며 저는 당분간 12월을 보낼 것 같아요.

영국의 크리스마스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았던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에는 이상하게 그 모든 것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여유롭고 따뜻한 영국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날을 기대해 봅니다. 저도 올 연말, 사랑하는 우리 가족을 위해 정성을 담아 만든 '나만의 크리스마스요리'를 선물해 보려고 해요. 여러분도 올해가 끝나기 전에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크리스마스 파티 요리도 포스팅 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