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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그것(It)일 때, 우린 "태명" 부르는 이유 (feat. 이어령 교수님)

by 올마 2026. 1. 26.

[올마일기 #2] 안녕하세요, 올마입니다. 저는 7년의 기다림 끝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기적 같은 기다림 끝에 찾아온 아이에게 제가 준 '첫 번째 선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바로 "태명(胎名, Fetal Nickname)"입니다.

 

📍 "The Baby" 혹은 "It"이라 불리던 영국 병원

 

저는 임신 초기 5개월을 영국에서 보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국 의료진들이 뱃속의 존재를 아주 객관적으로 부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로 'The Baby', 성별을 알기 전에는 심지어 'It(그것)'이라고 지칭하곤 하죠. 서구의 육아 전문가들은 태명을 짓는 이유를 매우 실용적으로 설명합니다. 파트너와 공유하는 '비밀 암호'나 유대감을 위한 '재미있는 별명' 정도로요. 그래서 Peanut(땅콩), Jelly Bean(젤리빈)처럼 가벼운 이름들이 주를 이룹니다. 심지어 아기 몸무게를 따서 "BIP(Baby In Progress) 2.0"이라 부르는 위트 있는(?) 부모들도 보았습니다. 참 서구적인 발상이죠? 

 

 

객관적인 'The Baby'와 정겨운 '까롱이'의 사이, 그 낯선 기록들

 

 

📍 故 이어령 교수님이 일깨워준 'K-태명'의 위엄

 

여기서 놀라운 인연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제가 영국 유학 시절 쓴 태명에 관한 글을 보시고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故 이어령 교수님의 유작인 《한국인 이야기》에 저희 아이의 태명 에피소드가 실리게 되었죠. 제게는 가문의 영광 같은 일이었습니다. 

 

교수님은 한국의 태명 문화를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생명 존중의 정점" 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확실히 서구의 태명이 재미를 위한 별명이라면, 한국의 태명은 태아의 '인격'을 완성하는 숭고한 단계였습니다. 

 

《한국인 이야기》 p.42 발췌
태명을 왜 한국 땅에서 짓기 시작했나. (중략) '배 속에서 자라는 아이와 대화하고 소통하고 싶다'는 모자 상호성의 욕망이요 그 흐름이다. (중략) 태명으로 인해 처음으로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이승도 저승도 아닌 '그승'의 세계와 소통하기 시작한다. 

 

 

 

 

한국인 이야기 - 이어령

 

 

📍 7년의 침묵을 깨고 지어준 이름, "까롱이"

7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저희 신랑이 지어준 이름은 '까롱이'였습니다. (프랑스 태교여행에서 지은 태명)

잠시 《한국인 이야기》 P34 책으로 읽어 보세요~~  

 

 

이어령 교수님의 문장 속에 우리 아이의 이름이 실리던 날의 전율

 

 

 

사실 ENTP인 저는 남들보다 특별한 이름을 짓고 싶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심결에 "까롱아~"라고 불렀을 때 뱃속에서 전해지던 '툭-' 하는 태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교수님이 말씀하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상호작용"이었습니다. (물론 조 씨 성을 가진 신랑 덕분에 '조...까롱'이라는 욕설 같은 위기도 있었지만요! 😂)

 

 

📍 가장 위대한 한류는 '생명 인식'에 있습니다

 

요즘 전 세계가 K-컬처에 열광하지만, 제가 발견한 가장 아름다운 한류는 우리만의 '생명 인식'이었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에 따르면 주변 국가인 일본과 중국조차 태명 문화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분명한 것은, 저도 영국에 살면서 임신 사실을 주변의 영국인(혹은 외국인)과 한국인에게 알리면~ 역시나 꼭 한국인들만 이런 질문을 합니다.

 

"태명이 뭐에요??"

 

반면에 영국인들 포함 외국인들은 그런 질문을 한번도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임신을 하면 꼭 태명을 지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나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먹는 이유도, 뱃속에서 이름을 불리며 보낸 10개월을 온전한 인생으로 인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태명은 아이를 '그것'에서 '너'로 불러내는 생명의 첫 울림이자, K-육아의 진정한 시작입니다.

 

 

✍️ 올마의 다정한 참견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아기에게 어떤 태명을 속삭여 주셨나요? 혹은 어떤 이름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그 짧은 이름 안에는 "너는 이미 우리에게 소중한 인격체야"라는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밤, 아이의 이름을 한 번 더 따뜻하게 불러주세요. 그 부름이 아이의 '생명 지능'을 깨우는 가장 큰 축복이 될 테니까요.

 

 

 

"신랑이 왜 파리 여행 중에 '마카롱'을 먹고 태명을 지었는지 궁금하시다면? [올마일기 #5 파리 태교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