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마일기 #31] 안녕하세요, 올마입니다. 오랜만에 지인찬스로 뮤지컬 <데스노트>를 봤습니다. 멜로망스 김민석과 탕준상의 숨 막히는 대결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고음이 무대를 채울 때마다, 제 머릿속에는 공연의 화려함도 좋았지만, 무거운 인문학적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 "내가 만약 데스노트를 줍게 된다면?"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라이토(김민석 분)가 우연히 사신의 명부인 '데스노트'를 손에 넣었을 때, 그는 세상을 정화하겠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웁니다.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범죄자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심판하는 것이죠.
무대 위 라이토를 보며 저는 영국 석사 시절, 우연히 법정을 견학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거세게 뛰었습니다. 하필 그날 참관했던 재판은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이었습니다. 피해자가 미성년자라 화면을 통해 울음 섞인 목소리만 흘러나오는데, 영어를 완벽히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법정 안에 흐르던 그 끔찍한 공기와 피해자의 고통은 온몸으로 전해졌습니다.
한동안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할 만큼 부들부들 떨렸던 그 무력감. 정의를 구현해야 할 법정이라는 공간에서 느낀 아이러니한 절망감. 그때 제 손에 데스노트가 있었다면, 저 역시 그 범죄자의 이름을 적어 내려가는 유혹을 떨칠 수 있었을까요? 라이토의 오만함이 비난받아 마땅함에도, 관객들이 그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아마도 우리 모두 가슴 속에 이런 '무력한 분노' 하나쯤은 품고 살기 때문일 것입니다.

📍 라이토의 오만, 그리고 우리 안의 분노
"나조차 라이토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미성년자의 삶을 짓밟는 범죄자들의 이름을 그 노트에 모조리 적어버리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 그 치가 떨리는 분노를 저 역시 경험해 봤기에, 저는 무대 위 라이토의 오만을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라이토가 든 펜 끝에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슴속에 숨기고 있는 '사적 복수'라는 위험한 열망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 마주한 서구의 정의는 결코 한 개인의 판단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토론과 합의, 때로는 답답할 정도의 복잡한 절차를 통해 완성되는 '사회적 약속'입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눈물을 마주하는 순간, 그 숭고한 절차는 너무나 느리고 무기력해 보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내려지는 가벼운 선고를 볼 때면, 법이라는 시스템이 과연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 집니다.
라이토는 바로 그 '법의 무능함'과 '대중의 갈증' 사이를 파고듭니다. 스스로 신이 되어 가장 빠른 방법으로 악을 처단하겠다는 그의 선언에 우리가 환호하는 이유는, 시스템이 주지 못한 카타르시스를 그가 대신 실현해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공연이 깊어질수록 저는 깨달았습니다. 라이토가 쓴 노트 속의 정의는 결국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아닌, '자신만이 옳다는 오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요. 그는 범죄자를 심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견해와 다른 사람들을 제거하며 스스로가 가장 혐오하던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 압도적 무대 연출과 두 천재의 숨 막히는 대결
공연 내내 묵직한 고민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데스노트>의 무대 연출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습니다. LED 바닥과 벽면을 활용해 시공간을 비틀어버리는 연출은, 마치 단테의 '신곡' 속 지옥의 층계를 무대 위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선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낸 이 압도적인 영상미는 공연 내내 관객들을 선과 악의 경계로 몰아넣었습니다.
특히 공연을 본 모든 관객들이 입을 모아 극찬하는 <데스노트>의 백미, 천재 대학생 라이토와 세계 최고의 탐정 L(탕준상 분)의 테니스 신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어쩜 공도 없는데 공 치는 소리와 연기가 저렇게 딱딱 맞을 수 있을까?' 눈앞에 보이지 않는 공을 쫓는 두 천재의 날카로운 응시, 그리고 바닥 LED가 공의 흐름에 따라 반응하는 시각 효과가 더해지자 제 눈앞에는 정말로 불꽃 튀는 경기가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소리와 몸짓만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극대화한 이 장면은, 서로의 정체를 꿰뚫어 보려는 두 인물의 치열한 심리전을 그 어떤 화려한 액션보다도 역동적으로 전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승부의 끝은 결국 참혹한 허무였습니다. 라이토는 치밀한 계략으로 L의 진짜 이름을 알아내고, 그가 설계한 스토리대로 L의 죽음을 완성합니다. 승리의 기쁨에 취해 스스로를 '새로운 세상의 신'이라 선포하며 광기에 젖어들던 그 순간, 그를 지켜보던 사신 류크는 비웃듯 라이토의 이름을 노트에 적어버립니다.
신이 되려 했던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 내려가는 사신의 펜 끝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마지막 장면. 바닥을 뒹굴며 죽음을 구걸하는 라이토의 모습에서 제가 본 것은 '정의의 승리'가 아닌, 권력이라는 독배를 마신 인간의 나약함과 비참한 최후였습니다.
✍️ 올마의 다정한 참견: 머리만 좋은 괴물보다, 정서가 건강한 아이로
공연장을 나서며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는데, 문득 우리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흔히 아이가 똑똑하게 자라 경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라지만, 라이토의 최후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천재성이 과연 축복인가?' 영국 법정에서 목격했던 미성년자 범죄의 서늘한 공기, 그리고 데스노트가 던진 묵직한 질문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1등을 하는 기술이나 영어 단어 하나가 아니라, 타인의 눈물을 닦아줄 줄 아는 '따뜻한 정서'와 느리더라도 정의로운 절차를 믿는 '단단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어제 발렌타인 편지를 쓰며 강조했던 [손때 묻은 정서의 힘]이 왜 중요한지, 라이토의 최후를 보며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머리만 좋은 괴물이 아닌, 가슴이 뜨거운 인간으로 자라날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응원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