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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난임, 영국에서 만난 기적 : 자궁의 질투

by 올마 2026. 2. 14.

[올마일기 #28] 안녕하세요, 올마입니다. 지난 글에서 제가 왜 '영유(영어유치원)'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지키려 했던 교육적 소신을 말씀드렸죠. 오늘은 그 똑똑한(?) 고민을 하기 전, '아이'라는 존재 자체가 간절했던 제 인생의 가장 낮고 뜨거웠던 기록을 꺼내 보려 합니다.

 


📍 "딩크로 살아도 충분해"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했던 영국 생활

 

영국에서의 5년, 아이가 없었기에 저는 제 삶에 더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의 오지랖도, "애는 언제 낳니?"라는 압박도 없었죠. 그저 신나고 즐겁게 나의 커리어와 취향을 채워가던 시간들. 저는 진심으로 '이대로 딩크족으로 살아도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주변 유럽 어디로든 날아가고, 토요일 밤이면 로컬 펍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늦게까지 맥주 한 잔을 기울여도 누구 하나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나의 기분과 나의 속도에만 맞추면 되는 삶. 그 완벽한 독립성이 주는 해방감은 중독적이기까지 했죠. 

정말 5년 동안 "후회 없이 잘 놀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제 생활을 즐겼습니다. 우리 신랑은 그런 저를 늘 존중해 주고 간섭하지 않는 최고의 파트너였거든요. 물론, 서로 지켜야 할 정도는 있었지만요. 😉 영국은 그렇게 저에게 '나 자신으로 온전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 홍콩 할머니의 질문: "아이에게서 자유로워질 것인가, 마주할 것인가"

 

그런 제게 변화가 찾아온 건 정기적으로 나가던 현지 티타임 모임에서였습니다. 정갈하게 우려낸 홍차와 스콘 향기가 가득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동네 영국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던 중, 한 홍콩 할머니가 제게 툭 질문을 던졌습니다.

"넌 왜 아기를 안 낳니? 혹시 기다리고 있는 거야?"

사생활을 존중하는 영국 문화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맞닥뜨린 날카로운 질문이었습니다. 멍해진 제게 할머니는 인생의 선배로서 다정한, 하지만 서늘할 만큼 명확한 조언을 덧붙였습니다.

 


"만약 기다리는 거라면 얼른 병원 가서 검사부터 해보렴.
하지만 만약 아이없이 살기로 결심했다면, 
아예 임신이라는 생각 자체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게 어때? 
그 질문을 네 머릿속에서 치워버려야 비로소 온전히 너의 삶을 살 수 있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할머니는 본인의 두 며느리에게도 결혼 직후 똑같은 말을 해줬다고 해요. 아이를 낳으라고 종용하는 시어머니가 아니라, 며느리들이 한 여성으로서 막연한 불안감에 에너지를 뺏기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길 바랐던 '진짜 멋진 어른'이었던 거죠.

그 쿨하고도 묵직한 조언은 제 가슴을 강하게 쳤습니다. 저는 사실 '아이를 안 갖겠다'고 확신한 딩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반드시 낳겠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예비 엄마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언젠가 오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안 오면 어떡하지'라는 은근한 불안감 사이... 그 어정쩡한 회색 지대에 제 소중한 시간을 방치하고 있었던 거죠. 할머니의 말은 저를 번쩍 깨웠습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모르는 상태'로 두는 게 아니라 '결과'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요. 저는 비로소 병원 문을 두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인생 계획에는 없었던, 치열한 난임 검사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유로웠던 딩크 시절

 

 

📍 영국 NHS 병원 복도, 동생의 카톡에 무너진 날


그렇게 NHS에서 마지막 난임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던 날이었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 영국은 난임 진료 일정에 부부가 함께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문화입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신랑은 학교 일정 때문에 함께할 수 없었고, 저는 그 길을 홀로 나섰습니다.

병원 대기실, 수많은 부부 사이에서 나만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 그 적막하고 차가운 공간에서 울린 카톡 알람 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크게, 가슴을 때리듯 울렸습니다. 한국에 있는 여동생이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언니, 나 임신했어!"

저보다 3년이나 늦게 결혼한 동생의 소식. 그 문장을 확인하는 순간, 제 마음은 단번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동생에게는 너무나 축하할 일인데, 그 기쁨의 크기만큼 제 처지가 선명하게 대비되어 서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곁에 신랑도 없는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아, 한참을 아이처럼 펑펑 울었습니다. 한참 뒤 겨우 눈물을 닦아내며, 동생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답장을 보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 "자궁이 질투한다"는 말, 그 신비로운 기적

 

사람들은 흔히 그런 말을 하더군요. 가까운 이나 형제가 임신을 하면 그 기운을 받아 늦었던 아이가 찾아온다고, 그걸 우스갯소리로 '자궁의 질투'라고 부른다고요. 솔직히 그전까지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난임으로 지친 이들을 달래기 위한 근거 없는 위로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거짓말처럼, 그날의 통곡 직후 제게도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7년 동안 굳게 닫혀있던 생명의 문이 아주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열린 것입니다.

동생의 소식에 "아~~ 정말 부럽다~~"라며 마음을 비우고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한 두 줄. 그것은 7년의 침묵을 깨는 가장 완벽한 생명의 신호였습니다. 그렇게 제 조카는 그해 4월에, 제 딸(까롱이)은 11월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7년이라는 긴 세월을 돌고 돌아왔는데, 결국 동생과 나란히 아이를 안고 유모차를 끌며 산책하게 될 줄이야. 그 차가운 영국 병원 의자에 홀로 앉아 울던 그날의 저는, 불과 몇 달 뒤에 펼쳐질 이 마법 같은 풍경을 꿈에도 몰랐던 일입니다.

 

 

"7년의 난임, 영국에서 만난 기적"

 

📍 집착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열린 문

 

"지금 생각해보면, 병원 복도에서 동생의 소식을 들으며 쏟아냈던 그 눈물이 제게는 '비워냄'의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도 동생처럼 기쁘게 축하만 해줄 수 있는 날이 오겠지"라고 마음 속 집착을 다 쏟아버렸습니다. 그 사이 신랑은 박사 논문을 최종 제출했고, 우리 부부는 프랑스 여행 잘 다녀와서 난임 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마음 먹었죠. 불편하고 힘들 치료 과정을 각오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홀가분한 틈을 타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7년의 침묵을 깨는 생명의 신호였습니다. 병원의 도움을 받기 직전, 자연적으로 아기가 찾아온 것이죠. "과학적인 의학의 힘을 빌리기로 마음먹고, 병원에서 받은 약 처방전을 준비해 두었는데, 정작 '까롱이'는 그 처방전이 무색하게도 가장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찾아왔습니다. 의학도 설명할 수 없는 '생명의 타이밍'이었죠." 故 이어령 교수님이 [한국인 이야기] 에서 말씀하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상호작용"은 우리가 가장 힘을 뺐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 올마의 다정한 참견: 삶의 주도권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홍콩 할머니의 말처럼,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거나 혹은 포기하지 못해 괴롭다면 차라리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해 보는 건 어떨까요? 결과를 확인하고 나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다음의 '나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니까요.

기적은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장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제가 7년 만에 겪은 이 신비로운 '질투의 기적'이, 지금 남몰래 눈물 훔치며 인생의 기로에 서 있는 당신에게도 곧 닿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당신의 자궁도 지금 예쁜 질투를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