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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같이 했는데 왜 나만?" 18주년 부부 현실 축하법

by 올마 2026. 1. 27.

[올마일기 #4] 안녕하세요, 올마입니다. 지난 1월 26일은 저희 부부의 결혼 18주년이었습니다. 18년이라는 거창한 숫자와 달리, 저희 집은 평소보다 더 고요했습니다. 꽃다발도, 근사한 레스토랑 예약도 없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하루였죠. 남들이 보면 "너무 무심한 거 아냐?" 하겠지만, 저희 부부는 이제 아무런 말이 없어도 서로의 진심을 읽어낼 줄 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처음부터 이렇게 '쿨한' 부부였던 건 아닙니다.

 

📍 "결혼은 같이 했는데, 왜 여자만 받아?" 신랑의 기적 논리

 


사실 저희 신랑은 결혼 초기부터 확고한(?) 철학이 있었습니다. "결혼기념일에 왜 여자만 뭔가를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둘이 같이 결혼했는데, 서로 주든지 아니면 둘 다 안 주든지 해야 공평한 거 아니냐"는 게 그의 주장이었죠. 당시엔 그 말이 어찌나 서운하고 야속하던지... 로맨틱한 서프라이즈를 꿈꾸던 새신부에게 그의 논리는 찬물을 끼얹는 격이었죠. 결국 저는 '안 주고 안 받는 게 속 편하다'며 스스로를 세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18년이라는 세월은 사람을 참 유연하게 만듭니다. 이제는 제가 아예 결혼기념일 날짜를 잊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거든요.

그러자 이번엔 반대로 신랑이 서운해합니다. "어떻게 결혼기념일을 잊을 수가 있어?"라며 입술을 내미는 그를 보며 생각합니다. 아, 이 남자도 결국은 '축하'받고 싶었던 거구나. 공평함을 외치던 그 시절의 호기도 결국은 사랑받고 싶다는 또 다른 표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 영국 국왕의 축전보다 귀한 우리만의 "카드" (feat: 영국 비교)

 

영국에서는 결혼기념일마다 선물하는 소재가 정해져 있습니다. 1주년은 종이, 5주년은 나무, 그리고 저희 같은 18주년은 도자기(Porcelain)처럼 매끄럽고 단단해진 사이를 축하하죠. 특히 결혼 60주년이 되면 버킹엄 궁전에서 국왕의 친필 서명이 담긴 카드를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합니다. "물론 이 카드는 가만히 있는다고 오는 게 아니라 직접 '신청'을 해야만 받을 수 있답니다". 60년 결혼기념일이라... 왕의 편지를 받을 만하네요. 저희는 앞으로 딱 42년 남았군요. 😝

 

60주년 결혼기념일 카드의 내용이 어떨지가 참 궁금한데요? 영국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블랙 유머' (Humorous Cards)라 이런 위트있는 내용이 들어가 있을 것만 같아요~

 

  • "나를 18년 동안이나 참아줘서 고마워(Thanks for tolerating me for 18 years)"
  • "아직 서로를 죽이지 않고 살아있음을 축하해!"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13년 전 5주년 기념일엔 아주 대판(?) 싸웠더라고요. 당시 저는 유학 생활에 지쳐 최악의 컨디션이었습니다. 괜히 무심해 보이는 신랑이 야속해 그를 달달 볶았죠. 결국 기념일 당일, 저희는 하루 종일 잠만 자다 저녁 늦게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 단골 중국 뷔페로 향했습니다. 기대 없이 앉아있던 제게 신랑은 빨간 봉투 속 핑크색 카드를 건넸습니다.

 

 

 

"매일매일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더 사랑해.
같이 있어줘서 고맙고, 너의 존재만으로 고마워."

카드 문구가 너무 좋아서 골랐대요. 

 

 

 

사랑스러운 부인에게
같이 있어줘서 고맙고, 사랑해줘서 고맙고,
너의 존재만으로 고마워.
사랑하는 남편이...

 

 

카드를 읽는데 유학 시절의 고생과 5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당황한 신랑은 제 가슴에 'Wonderful Wife'라고 적힌 작은 배지를 달아주며 말했어요.


"울지 마, 너는 남편이 인증한 원더풀 와이프야!"

 

 

 

📍 18년이 지나 깨달은 '기념일'의 진짜 의미

 

그날의 배지는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신랑이 달아준 그 마음만큼은 제 가슴에 훈장처럼 남아 있습니다. 5주년 때는 기념일이라는 '날짜'에 집착해 서로 상처를 주기도 했고, 출산 후에는 육아에 집중하다 보니 잊기도 했지만, 18주년이 된 지금은 압니다. 기념일은 하루를 특별하게 보내는 날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버텨온 수만 개의 평범한 날들을 축하하는 날이라는 것을요. 영국의 추운 집에서 입김을 뿜으며 차를 마시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 곁을 지켜준 이 남자가 여전히 저를 "Wonderful"하다고 믿어주는데 선물 좀 없으면 어떻습니까!

 

✍️ 올마의 다정한 참견
여러분은 결혼기념일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혹시 저희 집 신랑처럼 '공평함'을 주장하거나, 저처럼 '건망증'으로 서운함을 주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기념일의 본질은 값비싼 다이아몬드나 화려한 레스토랑에 있지 않습니다. 그저 옆에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세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벌써 이만큼이나 됐네. 고생 많았어."

그 한마디가 그 어떤 명품 선물보다 큰 온기가 되어줄 거예요. 21년 전 영국에서 만난 그 남자가 18년째 제 곁에 있다는 것, 그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기적'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