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마일기 #38] 안녕하세요, 올마입니다. 영화 한 편이 13살 아이의 눈을 통해 조선의 비극적인 역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역사책을 끼고 사는 까롱이와 함께 본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단종과 수양대군의 시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시백의 단종실록과 박영규의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영화 속 장면들이 어떻게 역사적 사실과 연결되는지, 그리고 엄흥도라는 충신의 진심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울림을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1. 단종 역사: 12살 소년 왕의 비극적 운명
1441년 문종의 장남으로 태어난 단종은 이름이 홍위(弘暐)였습니다. 8살에 왕세손, 10살에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452년 문종 서거 후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단종에게는 수렴청정을 할 대비도, 보호해 줄 어머니도 할머니도 없었습니다. 이 공백을 파고든 것이 바로 숙부 수양대군이었습니다. 수양대군은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등 원로 대신들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협박과 회유를 견디지 못한 단종은 1455년 세조에게 왕위를 넘겨주게 됩니다. 사육신 사건 이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습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청령포는 나룻배 없이는 드나들 수 없는 천혜의 유배지였습니다. 영화 속 엄흥도(유해진 분)가 간절하게 유배지로 선택받기 위해 청령포를 묘사했는데, 정말 슬픈 섬이 단종의 외로움을 대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단종은 결국 1457년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역사는 비운의 왕으로 차갑게 기록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 소년의 고독과 공포가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영화를 본 후 집으로 돌아와, 까롱이와 제일 좋아하는 역사 만화책 [박영규의 조선왕조실록]과 [박시백의 단종실록]을 함께 펼쳤을 때,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박영규 단종 편에는 사육신 처형 장면이 그대로 나와 있었거든요. "엄마! 이것 봐! 영화에서 나온 장면이 여기 그대로 있어!" 영화의 각본가가 이 책을 참고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화 속 장면들이 텍스트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방금 스크린에서 본 장면을 책에서 다시 발견했을 때의 그 짜릿함! 13살 까롱이에게 역사는 이제 '외워야 할 과거'가 아니라 '찾아내는 재미가 있는 숨은 그림 찾기'가 되었습니다.
| 시기 | 사건 | 단종의 나이 |
|---|---|---|
| 1441년 | 문종의 장남으로 탄생 (이름: 홍위) | 출생 |
| 1452년 | 문종 서거 후 왕위 즉위 | 12살 |
| 1453년 | 계유정난 발생 (수양대군의 정변) | 13살 |
| 1455년 | 수양대군에게 왕위 양위 | 15살 |
| 1457년 | 노산군으로 강등, 영월 유배 후 사망 | 17살 |
2. 박시백 단종실록: 정해진 파국을 향한 비극
영화를 함께 보고 온 아이들은 단종이 나오는 부분을 찾아 박영규와 박시백의 단종실록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박시백 조선왕조실록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라 이전에도 몇십번이나 반복해서 봤지만, 오늘만큼은 책 속의 삽화를 유심히 봅니다. "엄마, 단종이 내 나이에 왕이 되었어~", 수양대군은 정말 너무해~~" 까롱이는 아빠와 단종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까롱이 아빠는 사학 전공이라 둘의 대화는 끊이질 않아요.)
박시백 작가는 단종 시대를 '정해진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비극'으로 묘사합니다. 첫 번째 비극의 시작은 세종과 문종의 이른 죽음입니다. 세종이 가고, 그 뒤를 이은 문종마저 몸이 약해 2년 만에 승하했습니다. 12살 어린 단종에게 남겨진 것은 "어린 왕을 잘 부탁한다"는 유훈뿐이었습니다. 박시백은 왕권은 약하고, 김종서·황보인 같은 원로 대신들의 권력은 너무 비대해진 기형적인 구조에 주목합니다. 두 번째는 수양대군이 야심의 칼을 뽑은 계유정난입니다. 수양대군은 왕실의 권위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김종서를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합니다. 박시백은 수양대군을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치밀한 전략가'로 그립니다. 조카를 향한 연민보다는 권력을 향한 냉혹한 결단력을 강조하죠. 세 번째는 단종의 고립과 죽음입니다. 상왕으로 물러났던 단종은 사육신의 복위 운동이 실패하면서 결국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됩니다. 박시백은 유배지에서의 단종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한 소년'이 아니라, 비극적 운명을 묵묵히 받아내야 했던 가련한 군주로 묘사하며 독자의 눈시울을 붉게 만듭니다. [출처: 박시백 조선왕조실록]
영화를 보는 내내 까롱이가 눈을 떼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이 지점이었을 것입니다. 평소 읽었던 역사 만화와 전집의 내용이 스크린에 펼쳐지니 신기했어요.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사학 전공자인 아빠와 13살 딸, 이 두 '역사 덕후'가 꼽은 최고의 명장면이 일치했다는 사실입니다. 두 사람의 마음을 동시에 흔든 장면은 바로 '청령포의 눈물'이었습니다.
강 건너 유배지까지 찾아온 백성들이 울부짖으며 **"전하!"**라고 목놓아 부르자...
"울어도 좋으니, 제발 '전하'라는 말만은 하지 마라." 😭
정작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초라한 처지의 소년 왕. 그 고독한 진심이 스크린을 넘어 전해질 때, 부녀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가슴 아픈 공감을 나누었습니다. 반면, 10살 막내아들의 감상평은 분위기를 단번에 반전시켰습니다. 단종이 쏜 화살에 호랑이가 맞던 장면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었다며 해맑게 웃는 아들을 보니, 깊은 사색에 잠겨 있던 저와 신랑은 그저 허탈한 웃음만 터뜨릴 뿐이었죠. 비극적인 역사를 마주하는 우리 가족의 '동상이몽'이 펼쳐진 유쾌하고도 뭉클한 영화관 나들이였습니다.

3. 엄흥도 충신: 기록 너머의 진심과 온기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는 내내 제 가슴을 후벼 판 것은 단종을 연기한 박지훈 배우의 눈빛이었습니다. 그 처량하고 맑은 눈망울이 13살 우리 까롱이의 눈과 겹쳐 보일 때마다, 엄마인 저는 역사의 비극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감당했을 고독과 공포를 생각하니, 그는 더 이상 박제된 역사 속의 '제6대 왕'이 아닌, 지켜주고 싶은 한 아이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박지훈 배우 너무 잘 생겼다고 난리네요😝)
그 마음을 영화 속에서 대신해 주었던 인물이 바로 엄흥도(유해진 분)였습니다. 단종의 슬픔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곁을 지키던 그를 보며, 저는 간절히 바랐습니다. '저 이야기가 제발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고요. 실제 역사 속에서도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거둔 충신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졌겠지만, 저는 믿고 싶어졌습니다. 차가운 강풍이 불던 영월의 청령포에서, 단종이 마지막 순간에 느낀 것이 고립감이 아니라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준 백성들의 온기였기를 말이죠.
조선 단종 5년, 단종이 세상을 떠나자 시신이 강물에 버려지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세조의 서슬 퍼런 압박에 누구도 시신을 거두지 못했으나, 영월 호장 엄흥도는 "의를 행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며 몰래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장릉' 자리에 안치했습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이 엄흥도의 충절은 매우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책을 펼쳤을 때 이 이름을 발견하며 느꼈을 전율은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영화 속 유해진이 연기한 엄흥도의 진심 어린 눈빛과 행동은 단순한 연기를 넘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까롱이는 영화를 본 뒤 "엄마, 엄흥도 아저씨 같은 사람이 진짜로 있었다는 게 신기해"라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너무 사실적으로 있음 직한 엄흥도 역을 맡은 유해진 배우의 연기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역사라는 차가운 기록 위에 덧입혀진 '사람'의 온기를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비극적인 죽음이었지만,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는 밤이었습니다.
| 인물 | 역할 | 역사적 의미 |
|---|---|---|
| 엄흥도 | 영월 호장 |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 지낸 충신 |
| 박지훈 (배우) | 단종 역 | 어린 왕의 처량함과 고독을 섬세하게 표현 |
| 유해진 (배우) | 엄흥도 역 | 인간미 넘치는 연기로 충신의 진심 전달 |
영화를 보고 돌아온 날 밤, 까롱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 박영규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아이의 유별난 역사 사랑이 때로는 피곤할 때도 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아이의 눈빛을 보면 그 열정을 지켜주고 싶어 집니다. [왕과 사는 남자]를 보면서 역사를 배운다는 건 연도를 외우는 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박지훈 배우의 눈빛에 울고, 엄흥도의 의리에 감동하며, 아이와 함께 책을 찾아보는 이 시간. 명절 끝자락에 만난 단종은 우리 가족에게 '공감'이라는 가장 큰 역사 공부를 시켜주었습니다. 까롱이는 한번 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네요. (영화 볼 때마다 조는 아이인데 말이지요😉) 영화 한 편이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쑥 키워주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 올마의 다정한 참견: 아이의 취미는 부모를 공부하게 합니다.
까롱이 덕분에 저도 잊고 지냈던 조선 시대사를 다시 공부하게 된 명절이었습니다. 아이의 유별난(?) 역사 사랑이 때로는 피곤할 때도 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아이의 눈빛을 보면 그 열정을 지켜주고 싶어집니다. 여러분은 요즘 아이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계신가요? 영화 한 편이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쑥 키워주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