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마일기 #42] 솔직히 고백하자면, 영국 날씨가 나쁘다는 건 익히 알고 왔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영국에서 일곱 번의 겨울을 보냈지만, 그중 어느 한 해도 쾌청한 기억은 드무니까요. 하지만 2026년 현재 영국의 상황은 '변덕'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영국 기상 정보에 따르면, 올해 1월은 1908년 관측 이래 118년 만에 가장 잔인한 겨울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남동부 레딩(Reading) 지역은 31일 연속 비가 내리는 기염을 토했고, 일부 지역은 41일간 단 하루도 빗줄기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20년 전 제가 처음 마주했던 '낭만적인 런던의 안개'는 이제 기후 위기라는 이름의 'Relentless Rainfall(가차 없는 폭우)'로 변해버린 듯합니다. 장대비처럼 시원하게 쏟아지는 것도 아니면서, 그칠 기미 없이 일상을 야금야금 적시는 이 끈질긴 빗줄기. "영국에도 장마가 있는 거야?"라며 헛웃음을 짓던 필자의 농담이 이제는 뼈아픈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올마의 영국영어 relentless rainfall (영국 날씨 맥락에서의 느낌)
영국에서 이 표현을 쓸 때는 단순히 비가 많이 온다는 뜻을 넘어, '질릴 정도로, 좀처럼 그칠 생각을 않고 계속되는' 뉘앙스가 강해요. 한국의 장마처럼 "콰아아" 쏟아지는 느낌보다는, 하늘이 뚫린 듯 가차 없이(relentless) 하루 종일, 혹은 며칠 내내 눅눅하게 이어지는 영국의 전형적인 비를 묘사할 때 딱입니다.
기후 변화의 경고: 1도 상승이 가져온 7%의 습격
단순히 "비가 좀 자주 온다"는 식의 투정이 아닙니다. 비의 패턴 자체가 전례 없이 극단적으로 변했습니다. 불과 작년인 2025년 여름만 해도, 영국은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으로 '호스파이프 금지령(Hosepipe ban, 물 사용 제한)'이 내려졌던 나라입니다. 하지만 새해가 밝자마자 상황은 180도 뒤집혔습니다. 레딩 지역은 최근 한 달 사이 평년 강수량(58mm)의 두 배가 훨씬 넘는 141mm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기후 과학자들은 이러한 극단적 변화의 원인으로 '지구 온난화'를 지목합니다. 물리적으로 대기 온도가 1도 상승할 때마다 공기는 약 7% 더 많은 수분을 머금을 수 있게 됩니다. 그 결과, 비가 한 번 내릴 때마다 과거보다 훨씬 더 세차고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물폭탄'이 되는 것이죠. 필자에게 이것은 이론이 아닌 피부로 느끼는 현실이었습니다. 2014년 1월에도 폭우와 강풍으로 인해 마을의 거대한 나무들이 뿌리째 뽑히고 담벼락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밤마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돌풍이 창문을 거세게 흔들어대던 통에, 뜬눈으로 밤잠을 설치며 자연의 경고를 몸소 체험해야만 했습니다.
우산이 소용없는 영국식 비바람: "왜 안 쓸까?"
한국에서 온 저에게 가장 큰 문화적 충격 중 하나는 "영국인들은 왜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을까?"였습니다. 처음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직접 살아보니 그 답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영국의 비는 한국처럼 정직하게 수직으로 내리지 않습니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타고 수평으로 날아오거나, 사방에서 춤을 추듯 휘몰아칩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튼튼한 장대우산조차 영국의 돌풍 앞에서는 종이 인형처럼 뒤집히기 일쑤죠. 결국 영국인들에게 우산은 거추장스러운 '짐'일뿐, 진정한 방어막이 되지 못합니다.
현지인들이 우산 대신 후드 모자를 뒤집어쓰고 묵묵히 빗속을 걷는 것은 비를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생존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비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버티다 보니, 제가 4년 동안 입던 오리털 패딩은 이미 숨이 다 죽어 부피감이 사라졌고 색마저 바랬을 정도입니다.

영국의 겨울은 기온 자체가 아주 낮지는 않지만, 살을 파고드는 비바람 때문에 고성능 방수 자켓은 필수입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고어텍스(Gore-Tex)나 클래식한 왁스 자켓 같은 'Waterproof(방수)' 기능성 겉옷을 생활화합니다. 만약 영국 겨울 여행이나 거주를 계획하신다면, '예쁜 우산'을 챙기기보다 비바람을 완벽히 차단해 줄 강력한 방수 자켓 하나에 투자하시길 적극 권합니다.
(조만간 제가 직접 경험한 바버(Barbour), 잭 윌스(Jack Wills) 등 영국 브랜드 방수 자켓 쇼핑 팁도 자세히 포스팅할게요!)

영국 겨울 우울증과 싸우는 법
영국에는 "영국인 둘이 만나면 첫마디는 날씨 얘기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만큼 날씨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의미겠죠. 변덕스러운 날씨에 단련된 유머러스한 영국인조차 30~40일간 이어지는 빗줄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특히 오후 4시면 찾아오는 칠흑 같은 어둠과 끝없는 빗소리는 멀쩡한 사람조차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비가 내리면, 하루 종일 단 한 번의 햇살도 보지 못한 채 다시 어둠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영국의 가혹한 겨울입니다.
필자 역시 2010년의 혹독한 겨울을 보낸 뒤 맞이한 2011년 겨울은 유독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갑자기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의욕이 사라지더군요. 당시 태양을 찾아 호주나 남유럽으로 탈출하는 이웃들의 소식이 부럽다 못해 시샘으로 다가올 정도였습니다. 결국 필자 역시 남편에게는 미안했지만, 가족들과 함께 잠시나마 한국에서 따뜻한 햇살을 충전하고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영국의 겨울은 단순한 기분을 넘어 '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 계절성 정서 장애)'라는 신체적 반응을 불러옵니다. 영국 거주를 계획하신다면 다음의 생존 체크리스트를 꼭 기억하세요.
| 🚨영국 겨울 우울증 극복을 위한 필수 체크리스트 (SAD: 계절성 정서 장) 1. 비타민 D 섭취: 영국의 'Relentless rainfall' 속에서는 햇빛을 통한 합성이 불가능합니다. 영국 의사들이 권장하는 필수 영양제. 2. 라이트 테라피 (SAD Lamp): '햇빛 램프'로 불리는 특수 조명입니다. 멜라토닌 조절을 돕는 영국 자취생 및 거주자들의 필수 아이템. 3. Cosy & Hygge 문화: 런던포그(Earl Grey Tea Latte)와 향초를 활용한 아늑한 실내 환경 조성은 정서적 안정에 큰 도움. |
영국행을 계획 중인 분들께 솔직한 조언을 드리자면, 만약 여러분이 특유의 흐린 감성과 차분한 분위기를 사랑하신다면 영국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태양의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들이라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오셔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코스는 꽃이 피는 봄에 영국에 발을 내디뎌, 찬란한 여름을 만끽한 뒤 겨울이 오기 전 한국의 따스한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영국의 겨울은 이제 단순한 변덕을 넘어 점점 더 극단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118년 만의 폭우를 견디고 있는 2026년의 영국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이제 영국에서의 겨울은 물리적인 방수 자켓뿐만 아니라, 어둠을 이겨낼 정신적인 근육과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 올마의 다정한 참견: 인생의 소나기를 대하는 자세
영국 날씨가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젖은 옷은 언젠가 마를 것이라는 믿음으로 묵묵히 걷는 영국인들처럼요. 혹시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도 41일 연속 비가 내리고 있나요? 괜찮습니다. 당신은 이미 그 비를 견뎌낼 만큼 충분히 단단한 마음의 외투를 입고 있으니까요. 젖은 자켓을 툭툭 털어내고 나면, 언젠가 구름 사이로 비치는 찬란한 햇살을 마주할 날이 반드시 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