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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에 초코가루를? 고어텍스 찢는 딸의 진짜 공부

by 올마 2026. 2. 5.

[올마일기 #20] 안녕하세요, 올마입니다. 19편에서 고백했던 저의 처절한 영국 유학 생존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밥 한 끼 제 손으로 못 차려 먹던 '생활 지능 0'의 엄마였기에, 역설적으로 우리 집 아이들은 조금 다르게 자라고 있습니다. 😝

오늘은 제가 18편과 19편을 통해 강조했던 '결핍' '자율성'이 아이의 삶에서 어떻게 창의적 실행력으로 꽃 피우는지, 우리 집 주방과 거실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실험들을 통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 "엄마, 이거 맛있는데?" 초코가루(제티) 라면의 반전

 

겨울 방학을 맞이하면서 우리 집 주방은 매일이 실험실입니다. 그 중심에는 "일단 뭐든지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제 딸아이가 있죠. 퇴근하고 돌아와 보면 주방이 난장판이 되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라면을 무척 좋아하는 딸아이는 어느 날 사고를 쳤습니다(?).

 

"엄마, 라면이 달콤하면 어떨까? 

왠지 단짠단짠해서 맛있을 것 같지 않아?"

 


'아... 그래서 주방에 제티가 쏟아져 나와 있었구나.' 어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조합입니다. "이상할 것 같은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저는 꾹 참았습니다. 아이는 지금 자기만의 가설을 세우고, 직접 '맛'이라는 데이터로 확인해 보는 임상 시험 중이니까요.

결국 초코 가루가 듬뿍 들어간 정체불명의 라면을 국물까지 다 비웠다는 딸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엄마, 이거 진짜 맛있어! 딱 내 스타일이야!" 편견을 깨고 직접 부딪힌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아이는 스스로 찾아낸 것입니다.

아들에게도 물어봤는데 그 대답이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

 



 "누나가 제티 라면 끓여줬는데 넌 맛있었어?"

아들: "엄마, 거기에 허니 머스터드도 넣어줬는데, 단짠단짠 너무 맛있었어!!!" 👍




딸이 점심 식사로 만든 간장 달걀밥을 찍어 엄마에게 문자로 전송  

 

엄마 아들 내가 이렇게 노른자 안 터뜨려서 밥 잘 챙겨 주고 있다는 것을 칭찬해 달라는 메시지입니다. 😝

 

📍 고어텍스를 찢고, 눈썹을 미는 '불나방 꼬마 과학자'


따님의 탐구심은 음식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제 귀한 영양 크림이 어느 날 가장 아끼는 슬라임으로 변해 있고, 비싼 고어텍스 바람막이는 "대체 어떤 소재길래 비가 안 들어와?"라는 방수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안쪽이 가위질 한 번에 속살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매년 자신의 머리카락을 맘대로 자르거나 눈썹을 몇 번씩 밀어버리는 등, 딸아이는 세상의 모든 '왜?'를 몸소 부딪쳐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습니다. 6세 때 기질 검사를 하니 우리 딸을 한마디로 '불나방'이라 표현하더군요. 불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들어가서 뜨거움을 경험해야 하는 성향의 아이...

부모 입장에서는 뒷목을 잡을 일이고 "너 왜 비싼 옷을 망가뜨려!"라고 크게 꾸짖을 법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파괴가 아니라 탐구였습니다. 이론으로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직접 만지고 찢으며 얻는 '진짜 데이터'였던 것입니다.

 

동생을 위한 누나의 점심 메뉴: 1분 카레 데워서 카레밥 만들고, 냉동만두 노릇하게 굽고, 계란까지~~


🤖 AI 시대, '정답'만 지키는 아이는 위험하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AI)과 공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챗GPT에게 "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을 물으면 전 세계에서 가장 검증된 레시피를 1초 만에 알려줍니다. 지식과 정보는 이제 과잉입니다.

하지만 AI가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라면에 제티와 머스타드를 넣어보는 무모함'이나 '고어텍스를 찢어보는 호기심'입니다. AI는 확률과 통계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정답만 제안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진보는 언제나 정답 밖의 '엉뚱한 시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크림을 아껴 바르는 아이는 주어진 자원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겠지만,

★ 크림으로 슬라임을 만드는 아이는 새로운 물질을 창조하는 기획자가 됩니다.

● 고어텍스 옷을 소중히 입는 아이는 훌륭한 소비자가 되겠지만,

★ 소재가 궁금해 옷을 찢어보는 아이는 혁신가가 됩니다.


✍️ 부모의 역할은 '뒷수습'이 아니라 '지켜봐 주기'


저의 유학 시절 '햇반 결핍'이 생존을 가르쳤다면, 제 딸의 '실험 방치(?)'는 창의를 가르쳤습니다. 아이가 엉뚱한 요리로 주방을 어지럽힐 때, 그것을 "황당한 사고"로 볼 것인가? 혹은 "위대한 실험"으로 볼 것인가? 그 한 끗 차이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엄마인 제가 해줄 일은 아이에게 '맛있는 라면 레시피'를 주는 게 아니라, 마음껏 초코 가루를 섞어볼 수 있는 '주방과 인내심'을 빌려주는 것이라는 걸요. 가끔 화도 나고 당황스럽지만,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먼저 궁금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단련되어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네요. 😉)

여러분, 오늘 아이의 인생에서 여러분의 '정답'을 하나 치워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빈자리가 아이의 놀라운 실험실이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이의 엉뚱한 행동 때문에 당황했던 경험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