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마일기 #1]
안녕하세요, 올마입니다. 2026년 1월 '올드마마의 육아 레시피'를 개설하고 여러분에게 건네는 첫 인사에요. 앞으로 제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놓으며 여러분과 진하게 소통해 보려 합니다.
첫 시작은 조금 도발적인 질문으로 해볼게요.
"결혼하면 누구나 당연히 엄마를 꿈꾸나요?"
29살, 조급함에 등 떠밀려 했던 결혼
저는 ENTP입니다. 공부든 일이든 육아든 '재미'와 '흥미'가 있어야 동기가 팍팍 생기는 성향입니다. 보통 사람들과는 살짝 비껴난(abnormal) 비판적 사고를 즐기는 편이라, 사실 남들 다 하는 걸 그대로 따르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그런 제가 29살, 영국 유학 시절에 덜컥 조급해졌습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대거 결혼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게다가 영국에서 만난 석·박사 언니들이 다들 솔로인 걸 보며 “나도 빨리 안 가면 저 언니들처럼(?) 되겠는데?” 라는 철없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언니들 미안해요! ㅎㅎ 여전히 솔로이신 분들도 꽤 있다는) 결국 석사 학위를 받자마자 남자친구와 한국으로 날아가 5개월 만에 결혼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렇게 30살 1월, 후딱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아이 없는 평온함이 너무 좋았습니다"
결혼 후 2년 만에 다시 영국으로 떠나 신랑의 박사 과정을 뒷바라지하며 5년을 보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 제 그림 속에 '아이'는 선명하지 않았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누리는 평온한 일상이 아이로 인해 깨지는 것이 오히려 두려웠거든요. 누군가는 차갑다 말할지 모르지만, 그게 그때 저의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만약 그 7년을 한국에서 보냈다면 어땠을까요?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왜 아기 안 낳냐"는 오지랖 섞인 질문들에 숨이 막혔겠죠. 다행히 영국에서의 저는 7년 내내 '자유로운 새댁'으로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시아버지의 눈물과 남편의 '빈틈'
정작 저는 무심했는데, 주변은 조용히 폭풍전야였더군요. 친정엄마는 지인들의 질문에 지쳐가고 있었고, 시댁에서는 아들(제 남편)에게만 조용히 압박(?)을 넣고 계셨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희 시아버지는 큰 아들이 아이를 못 낳을까 봐 울면서 기도까지 하셨대요.
저는 신랑에게 물었습니다. "꼭 아이가 있어야 해?"
신랑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무조건 한 명은 있어야 해!"
아이들을 유독 예뻐하며 돌보던 신랑의 뒷모습에서 설명할 수 없는 '빈틈'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아이를 생각지 않았던 제가 아이를 간절히 원하게 된 순간, 역설적으로 7년이라는 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서른 일곱, '올드마마'의 당혹스러운 시작
신랑이 박사 논문을 제출하던 날, 기적처럼 선물 같은 아기가 찾아왔습니다. 1박 2일간의 사투 같은 유도분만 끝에 아이를 만난 날, 저는 기쁨보다 '당혹감'을 먼저 느꼈습니다. 서른 후반의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엄마'라는 이름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거든요. 영국에서 석사 후 글도 쓰고 나름 잘 나간다는 저였지만, 정작 내 아이의 울음소리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늙은 엄마(Old Mama) 일 뿐이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우리를 위해
이 블로그는 성공한 엄마의 완벽한 육아 기록이 아닙니다. 아이 없이도 행복할 줄 알았던 제가, 뒤늦게 엄마가 되어 고군분투하며 깨달은 '진짜 행복' 에 관한 것입니다. 영국 문화에서 배운 느긋함과 한국의 치열한 육아 현장에서 다져진 내공을 담아보려 합니다.
혹시 지금 "나만 엄마 자격이 없는 건가?"고민하며 밤잠을 설치는 초보 엄마가 있다면 제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저도 처음엔, 엄마가 될 생각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