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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 누구나 엄마를 꿈꾸나요?

by 올마 2026. 1. 25.

[올마일기 #1] 안녕하세요, 올마입니다. 2026년 1월, '올드마마의 영한 레시피'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열며 여러분께 첫 인사를 건넵니다. 제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놓기에 앞서, 조금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결혼하면 누구나 당연히 엄마를 꿈꾸셨나요?"

 


📍 29살, 조급함에 등 떠밀려 했던 결혼

 

저는 ENTP입니다. 재미와 흥미가 동력인 사람이고, 남들 다 하는 관습적인 삶에 질문을 던지는 걸 즐기죠. 그런 제가 29살, 영국 유학 시절에 덜컥 조급해졌습니다. 한국의 친구들이 대거 결혼을 시작하고, 영국에서 만난 멋진 석·박사 언니들이 솔로로 지내는 걸 보며 철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빨리 안 가면 저 언니들처럼(?) 되겠는데?" 결국 석사 학위를 받자마자 한국으로 날아가 5개월 만에 결혼 준비를 마쳤고, 30살 1월에 후딱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 영국에서의 5년, "아이 없는 평온함이 너무 좋았습니다"

 

결혼 후 다시 영국으로 떠나 신랑의 박사 과정을 뒷바라지하며 5년을 보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 제 인생 그림 속에 '아이'는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누리는 평온이 아이로 인해 깨지는 게 오히려 두려웠거든요.만약 그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다면 "애는 언제 낳니?"라는 오지랖에 숨이 막혔겠지만, 다행히 영국에서 저는 5년 내내 자유로운 새댁으로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아이 없이도 완벽한 삶이라 믿었으니까요.

 

 

영국에서 자유롭고 느긋한 삶

 

 

📍 시아버지의 눈물과 남편의 '빈틈'

 

정작 저는 무심했는데, 주변은 폭풍전야였더군요. 시댁에서는 아들에게 조용히 압박을 넣고 계셨고, 시아버지는 큰아들이 대를 못 이을까 봐 울면서 기도까지 하셨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랑에게 물었습니다. "꼭 아이가 있어야 해?" 신랑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무조건 한 명은 있어야 해!"

아이들을 유독 예뻐하던 신랑의 뒷모습에서 설명할 수 없는 '빈틈'을 발견한 순간, 제 마음도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참 역설적이죠? 아이를 간절히 원하게 된 순간부터, 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 서른일곱, '올드마마'의 당혹스러운 시작

 

신랑이 박사 논문을 제출하던 날, 기적처럼 아기가 찾아왔습니다. 사투 끝에 아이를 만난 날, 저는 기쁨보다 '당혹감'을 먼저 느꼈습니다. 서른 후반의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엄마'라는 이름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거든요. 영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글을 쓰며 잘 나가던 저였지만, 정작 내 아이의 울음소리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늙은 엄마"(Old Mama)일 뿐이었습니다.

 

 

✍️ 올마의 다정한 참견: 어제의 '나'와 오늘의 '엄마' 사이에서

이 블로그는 단순히 아이를 잘 키우는 법을 기록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아이 없이도 충분히 완벽할 줄 알았던 제가, 뒤늦게 엄마가 되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며 써 내려가는 '삶의 레시피'에 가깝습니다. 영국 유학 시절의 여유와 자유, 귀국 후 한국의 치열한 육아 현장과 워킹맘으로서의 고군분투... 그 사이 어디쯤에서 저는 길을 잃기도, 또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올드마마의 영한(英韓) 레시피'에는 영국 문화에서 배운 삶을 대하는 느긋한 시선과 한국 엄마의 뜨거운 내공을 한 그릇에 담아보려 합니다. 꼭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어제의 나를 그리워하면서도 오늘의 삶을 사랑하고 싶은 분들, 나만의 속도로 인생을 요리하고 싶은 모든 분과 진하게 소통하고 싶습니다. 완벽한 정답보다는, 우리 각자의 입맛에 맞는 행복을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여유와 위로'라는 가치

 

 

영국에서 매일 오후 마셨던 따뜻한 차 한 잔과 스콘이 제게 여유를 주었듯, 제가 이곳에 정성껏 차려낼 글들이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휴식이,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한 끼의 위로가 되길 꿈꿔봅니다. 자, 이제 올마의 '영한 레시피' 첫 번째 재료를 꺼내 볼까요? 다음 글에서는 영국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故 이어령 교수님도 감탄하신 우리만의 특별한 문화 '태명'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